찬미 예수님
한 주간 동안 은총의 시간 보내셨습니까?
하느님께서 우리의 신앙을 성숙시켜 주시고 축복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인간은 다양한 욕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는 여러 단계로 인간의 욕구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는 어느 단계의 욕구를 추구하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음식과 휴식을 취하려는 생리적 욕구,
자신을 보호하려는 안전의 욕구,
가족과 친구와 친교를 맺으려는 애정과 소속의 욕구,
자아존중과 인정에 관한 존중의 욕구,
자기발전을 추구하는 자아실현의 욕구,
자기완성을 넘어서 세계에 기여하려는 자기초월의 욕구입니다.
종교는 상위의 욕구를 추구합니다.
죽고 난 다음에 어디로 갈 것인가? 세상을 초월한 내세에 대한 욕구입니다.
지금 살아 있을 때 우리가 사는 사회를 어떻게 복음적으로 만들 것인가? 자기초월에 대한 욕구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세상을 초월한 내세에 대한 욕구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1코린 15,19) 왜냐하면 하느님 나라는 내세에 완성될 것이고, 우리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 희망을 걸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루카 6,20) 라고 말씀하십니다. 가난한 사람들, 굶주리고 우는 사람들, 미움받는 사람들이 행복한 이유는 내세, 즉 하느님 나라에서 보상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부자와 자라로의 비유에서 구체적으로 내세 이야기를 발견합니다.
즐겁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던 부자는 죽어서 저승에서 고통을 받습니다.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배를 채우던 가난한 라자로는 죽어서 아브라함 곁에 있습니다.
부자가 고통을 호소하자 아브라함이 이렇게 말합니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루카 16,25)
이렇게 신앙인들은 내세를 믿고 세상을 초월한 내세의 욕구를 추구합니다.
신앙인은 또 자기를 넘어서는 자기초월의 욕구를 추구합니다.
나의 행복만을 추구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 특히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의 행복도 추구합니다.
가난한 사람, 굶주리고 우는 사람, 미움받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기도해 주고 필요할 때 도움을 줍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예레미야는 주님께 신뢰를 두는 복된 사람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 제 뿌리를 시냇가에 뻗어, 무더위가 닥쳐와도 두려움 없이, 그 잎이 푸르고, 가문 해에도 걱정 없어, 줄곧 열매를 맺는다."(예레 17,8)
하느님을 신뢰하는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상위의 욕구를 추구하는 신앙인은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 때문에 삶의 무더위가 찾아와도 두려움이 없고, 인생의 가뭄이 찾아와도 걱정이 없습니다.
오늘은 연중 제6주일입니다. 한 주간 기쁘고 당당하게 지내면 좋겠습니다.
잠시 묵상합시다~